1. 작품 소개

오빠는 나에 대해 기분 나쁠 정도로 너무 많은 걸 알고 있어.

그녀를 울리는 건 그 누구도 용서 못해!

어린 시절부터 오누이처럼 지내온 한태상과 황보비. 세상에 대해 너무나 잘 알기에 카사노바가 된 태상은 너무나도 순수하고 아름다운 비를 지켜주고자 하지만, 그들을 둘러싼 주변의 사건들이 태상의 마음을 흔들어놓는데…….

“내가 맡아.”

“뭐?”

“너, 내가 맡는다고.”

“그건 아빠도 아셔. 하지만 오빠만으론 안 된대. 오빠도 언젠가는 결혼을 할 테고…….”

“나랑 해. 차 실장하고 할 바엔 차라리 나랑 하자.”

“오빠…….”

“결혼하자.”

2. 작가 소개

이선미

1971년 대구 출생.

성숙한 사람들의 사랑, 철부지들의 사랑, 자기애, 집착 등 사랑의 다양한 측면을 그리고 싶어 하는 작가. 궁극적으로는 ‘인간’을 담아내는 로맨스소설을 쓰는 것이 목적이라고.

▣ 출간작

아라사의 서우여

석빙화

광란의 귀공자

10일간의 계약

커피프린스 1호점

하록과 배태랑

달의 시 外

3.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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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4. 미리 보기

지금 가장 두려운 사람이 있다면 바로 이 사람, 한태상. 타이밍도 절묘하죠. 이거 봐요, 내가 뭐 하는지 귀신같이 안다니까요. 어떨 땐 귀신보다 무서운 사람이죠. ‘절대 장난 아님’ 붙은 얼굴로 폭탄선언을 한 사람이에요.

너무 놀라서 끄윽끄윽 숨넘어가는 줄 알았어요. 찬 녹차를 생수 마시듯 벌컥벌컥 들이켜고는 한참 동안 사레가 걸려 콜록콜록 기침을 해댔어요. 오빠는 툭툭 등을 두드리면서도 잔인하게 충격을 가했죠.

「걱정하지 마. 내가 다 알아서 할게. 그런 얌통머리 없는 녀석한테는 절대 안 보내.」

끽끽대는 목소리로 농담하지 말라니까 같잖다는 눈으로 대꾸도 않더군요. 좋아 죽을 것 같아도 남의 남자는 뺏는 게 아니래요. 오빠도 임자 있는 여자는 절대 안 건드린다나요. 참 도덕적이기도 하죠.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어요. 정말 턱도 없는 소리 아닌가요? 한태상하고 부부가 된다니…… 하! 하하, 아하하 하하! 미친 사람처럼 웃어버렸죠. 머릿속으로 상상하니까 정말 웃기잖아요.

그러다가 죽을 뻔했어요. 내가 웃는 게 무척 기분이 나빴나 보더라고요. 상상이 현실이 되어버린 거예요. 아, 생각하기도 싫어요.

이가 부러지는 줄 알았어요. 어찌나 힘껏 입술을 들이대는지 벽에 머리를 꽝 부딪칠 뻔했죠. 다행히 오빠가 잡아당겨서 그 봉변은 면했는데…… 대신 뜨겁고 물컹한 게 입안으로 쑥 들어오는 거예요. 웃고 있었는데 소리가 더 이상 나오질 않았어요. 성대가 고장 난 것처럼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어요. 숨도 못 쉬겠는데 소리를 지를 수가 있겠어요? 눈을 크게 뜨고 있었어요. 그래서 오빠가 내게 무슨 짓을 하는지 낱낱이 봤죠. 참 섬세한 손이라고 감탄했던 그 손이 우악스럽게 내 머리를 죄었어요. 머리가 짜부라질 것 같았어요. 아파서 꿈틀거렸죠. 그랬더니 잠깐 틈을 주더군요. 그런데 너무 잠깐이었어요. 뭐라고 하기 전에 다시 했죠. 키스를.

태상 오빠와 키스를 하다니!

그러니까 그게 고등학교 때인가. 장난스럽게 뺨에 입맞춤한 이후로 처음 있는 입맞춤이었죠. 물론 전혀 차원이 다른 엄청난 충격이었어요. 다시 뜨겁고 촉촉한 감촉이 입술에 닿는 느낌이 들었어요. 부드러운 감촉이 입술 사이로 들어왔어요. 오빠가 내 입술을 핥았어요. 더럽게 뭐 하는 짓일까 생각했죠. 그래도 가만있었어요. 궁금했거든요. 오빠가 어떻게 하는지 알고 싶었어요. 예쁜 여자들한테 말이에요.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었어요. 정확히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매우 신기하고 특별한 거라고 믿었어요. 그래요, 기대는 했지만 흥분은 하지 않았죠. 설레지도 않았어요.

오빠는 열심이었죠. 윗입술을 살짝 치켜올리듯 핥더니, 어금니까지 깊숙이 혀를 집어넣는 거예요. 굉장히 놀라운 충격이긴 했어요. 하마터면 까무러칠 뻔했죠. 화들짝 놀라서 오빠의 어깨를 밀었어요. 아, 그런데 너무 힘이 센 거예요. 이렇게 단단한 줄 몰랐어요.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때 뭔가가 속에서 울렁거렸어요. 이럴 줄 몰랐거든요. 뒤뜰에서 장작 패는 머슴의 그것처럼 넓고 울퉁불퉁한 게 오빠 가슴에 있었어요. 그 감촉 때문에 말할 수 없이 흥분됐어요. 핫팩처럼 뜨거운데 무거운 가구처럼 딱딱했어요. 손바닥을 짝 펴서 더듬어보았죠. 더 세게 밀어도 보았어요. 옴짝달싹도 하지 않아서 이내 포기해버렸죠. 죽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눈을 감고 가만히 있었어요. 그러고 있으니까 오빠의 냄새가 느껴졌어요. 비누 냄새, 화장수 냄새, 담배 냄새,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냄새 때문에 오빠의 목덜미에 코를 박고 싶어졌어요. 어쩌면 오빠의 혀에서 나는 냄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아니면 쇄골 근처에 붙은 근육이나, 쿵쾅 뛰는 가슴 언저리 어디쯤에서나, 내 등을 쓰다듬고 있는 손가락 사이에서…… 몸속 깊숙이 그 냄새를 들이켜고 또 들이켰지만 알 수가 없었어요. 단지 너무 좋다는 것뿐, 그 속에 파묻혀 정신이 혼미하다는 것뿐이었어요. 주유소에서 나는 휘발유 냄새보다 더 좋았어요. 너무 좋아서 계속해서 그 냄새를 맡고 싶었어요. 왜 예전에는 못 느꼈을까?

너무 숨을 들이켜 호흡이 어렵겠다고 느낄 때쯤, 오빠가 떨어져나갔어요. 난 축축해진 입술을 손등으로 닦았죠. 오빠는 날 빤히 보고 있었어요. 눈이 이상하게 번쩍번쩍하더군요. 화난 사람처럼 딱딱하게 굳은 얼굴이었어요. 눈 밑이 시뻘갰어요. 오빠는 열이 나서 폭발해버릴 것 같았어요. 그때 오빠가 말했죠.

「종소리 들렸어?」

아니, 안 들렸어요. 오빤 내가 자기한테 반하는 불상사가 일어나길 바라는 거였어요. 그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겠어요? 자그마치 23년을 같이 지냈는데, 이제 와서 그런다는 게 더 이상한 일이죠.

오빠는 실망했어요. 자존심 상해했어요. 그래서 위로했죠.

「고마워. 그런데 이렇게까지 안 해도 돼. 오빠는 지금처럼 자유롭게 살아. 나 때문에 바뀌려고 하지 마. 오빤 나랑 다른 거 알아. 난 고등학교 졸업한 이후로 한시라도 빨리 결혼이 하고 싶었어. 북적거리면서 사는 게 소원이었어. 하지만 오빠는 아니잖아. 그렇게 억지로 노력 안 해도 돼.

다시 이러면 나 화낼 거야. 난 오빠가 있는 게 좋아. 그러니까 이런 거 하지 말자. 이상해. 가야겠다. 씻고 잠이나 자야지.」

민망하고 어색한 이 상황에서 어서 빨리 달아나야 했어요. 장난한 것처럼 웃어넘기기에는 사실 엄청난 일이 일어난 거였죠. 처음엔 반은 장난 반은 호기심이었는데, 이제 기분이 이상해졌어요. 아무리 무신경하게 넘기려고 해도 촉촉해진 오빠 입술이 그렇게 놔두질 않았어요. 자꾸만 빨갛게 부푼 오빠의 입술에 시선이 갔어요. 보면 볼수록 빨려들 것 같았어요. 하지만 그래선 안 되는 거죠. 이 상황만 모면하면 곧 아무렇지도 않게 잊힐 거라고 생각했어요. 지금만 벗어나면 언제나처럼 다정한 오누이가 될 수 있을 거예요. 다급히 일어나서 현관으로 내달렸죠.

「안 될 거 없어. 결심해서 하겠다는 거잖아. 나랑 결혼해. 그렇게 결심해.」

「장난하지 마. 오빠 동생끼리 결혼하는 게 어디 있어?」

「좋아하면 돼. 못할 거 없어.」

「자꾸 그러면 나 화낸다. 내가 바본 줄 알아? 결혼에 관심 없었으면서 갑자기 이러는 거잖아. 내가 불쌍해서 그러는 거 모를 줄 알아?」

「나쁜 짓 아닌데 무슨 상관이야? 사랑해서 결혼하는 거, 난 진작 믿지도 않았고 넌 이제 포기했으니까 된 거 아냐? 걸릴 게 뭐가 있어? 아버지 좋아하실 거라고 장담해. 우리 서로 너무 잘 알아 탈이고, 곁에 없는 거 끔찍하게 여겨. 난 나보다 널 더 소중하게 아껴. 누구보다 네가 행복하길 바라.」

「나도…….」

「더 이상 뭐가 필요하지?」

사람 말 못하게 하는 데는 선수죠. 할 말이 없었어요. 하마터면 ‘그래 맞아.’ 할 뻔했죠.

「오빤…… 오빤 너무 차갑잖아. 그래서 안 돼. 싫어. 오빠랑은 싫단 말이야!」

그러고 나와버렸어요. 집에 와 생각해보니까 진짜 화가 나더라고요. 자기가 무슨 예수님이라도 되는 양 굴잖아요. 내가 무슨 악의 구렁텅이에 빠졌다는 건가요? 그렇다고 해도 자기가 구제해줘야 되는 건 아니잖아요.

아무튼 잘난 척하는 데 정말 질렸어요. 아예 날 자기 마음대로 갖고 놀 심산인 거예요. 아, 물론 나쁜 마음으로 그런 게 아닌 건 알죠. 그것 때문에 더 화가 나요. 난 왜 오빠한테 짐만 되는 걸까요? 이렇게 우울하고 심란할 때면 태상 오빠가 즐겁게 해줬는데, 그런 오빠 때문에 고민할 줄 누가 알았겠어요?

탈의실에서 나갔더니 입구에 차 실장이 서 있었어요. 깜빡했지 뭐예요?

“어떤 영화 좋아해요?”

“징그러운 괴물 나오는 것만 아니면 돼요.”

어젯밤에 악몽을 꿨거든요. 차 실장의 귀에서 구더기 같은 괴물이 구물구물 기어 나오는 꿈.

“그런 건 아닐 겁니다.”

그는 주머니에서 다시 티켓을 꺼내더군요. 슬쩍 보니까 제목이 ‘맨 인 블랙 2’. 전편을 봐서 알죠. 엄연히 말해 괴물은 아니죠. 외계인이지.

“내 차로 움직입시다.”

“그래요.”

주차장으로 걸어갔죠. 차가 많았어요. 나도 모르게 두리번거렸어요. 일부러 차 실장 옆에 바짝 붙어 걸으니까, 차 실장이 친근하게 웃더군요. 종소리는 다시 울리지 않았어요. 이제는 정말 고철이 되어버렸나 봐요.

그때 뭔가 움직였어요. 내가 걸음을 멈추자 차 실장도 멈췄어요. 차에서 내린 사람이 우리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죠.

“안녕하십니까?”

차 실장이 먼저 인사를 건넸어요. 그런데 태상 오빠는 머리도 까딱 안 하는 거예요. 이런 사람이에요. 자기 안중에 없는 사람은 걸레만도 못한 취급이죠. 거만하고 냉랭하고 자기밖에 모르고, 한마디로 모르는 사람한테는 지독하게 굴어요.

“가.”

손목을 낚아채 잡아끌었어요.

“싫어요.”

매정하게 뿌리쳤죠. 그랬더니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더라고요. 무서워 죽겠네.

“말 들어.”

“영화 보기로 했어요. 가요, 차 실장님.”

보란 듯이 차 실장의 차 앞에 섰죠. 차 실장에게 눈짓을 보냈더니 차 문을 열어줬어요. 타려고 하는데 오빠가 팔을 확 잡아당겼어요.

“왜 이래요!”

하지만 오빠는 내가 화난 것은 신경도 안 썼어요. 차 실장을 보고 싸늘하게 말했죠.

“우리 결혼해. 무슨 말인지 알지? 앞으로 비한테 신경 꺼.”

“오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