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현관에서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삐삐삐 삐삐삐삐.
빼액빼액빼액.

번호를 잘못 눌렀다며 기계가 거칠게 거부하고 있었다.
은서는 현관으로 달려가 문을 열었다. 아. 오빠가 서 있다.
그녀는 몸에 힘이 빠지며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런 은서를 본 준서가 취중에도 놀라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왜, 왜?”

은서는 울음을 터뜨리며 준서를 껴안았다.

“오빠 왜 전화 안 받아. 왜 이렇게 늦게 와. 내가 얼마나 얼마나 걱정했는데.”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준서는 은서의 등을 토닥이며 현관문을 닫았다.

“미안, 미안. 내가 시끄러운 데 있어서 전화벨 소리를 못 들었나 봐. 걱정했구나. 진짜 미안.”

준서는 은서의 어깨를 양손으로 잡고 그녀를 떼어내려 했다. 그러나 은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더 깊이 준서의 품으로 파고 들었다. 흐느끼는 소리가 서러웠다.

현관에 등을 기댄 채 준서는 잠시 은서를 안고 서 있었다.
그의 비어 있는 가슴을 은서의 눈물이 채워왔다. 그의 섬세한 손가락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자 은서가 차츰 진정되어 가는 것이 느껴졌다.
새벽 2시. 모든 것이 잠든 시각에 두 사람은 서로의 상처를 부드럽게 위무하고 있었다. 애당초 상처를 입힌 것도 서로였지만.

준서는 고개를 숙여 입술을 은서의 귓가에 대고 들릴 듯 말 듯 나지막한 소리로 속삭였다.

“이젠 날 놔줘, 은서야. 오빠 술 많이 마셨거든. 오빠가 술 마셨을 때는 이러면 안 되는 거거든.”

그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은서가 그에게서 몸을 떼었다. 창피한 듯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돌아선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쿵쿵거리며 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 닫았다.

덥다.

준서는 소파에 몸을 내던져 엎드렸다. 머리가 울리고 어지러웠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 보다.

은서가 오늘은 에어컨을 안 틀고 있었나 보다. 공기가 후끈하다.

그는 길다란 몸을 소파에 늘어뜨린 채 꼼짝도 하지 못하고 누워 있었다.
천장도 가구도 머리도 마음도 빙글빙글 돌며 그를 휘저어댔다.


드라마 가을동화에 바치는 트리뷰트입니다.
상처와 절망을 지나 성장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에게 보내는 격려의 글이기도 합니다.

원성혜

어린 날 만화가가 되고 싶었으나 좌절,
이제는 만화를 글로 적는다는 기분으로 소설을 쓰고 있음.

심리학 전공.
광고쟁이 출신.

출간작 : 

‘어쩌다가 언년이로 환생하여’
‘흘러넘치다’
‘꿀과 바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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