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한 약속의 끝은?
연인들의 사소한 엇갈림의 이야기.

“나, 너 찜 한 거다?”
“뭐?”
“찜!”
우혁은 검지에 침을 살짝 바르더니 하나의 볼에 갔다댔다.
“뭐야, 더럽게!”
“너야말로 뭐 하자는 거 아니라니까 왜 그렇게 얼어?”
하나의 볼을 집어 흔든 우혁은 눈썹을 올렸다 내렸다. 얼얼해진 그녀의 얼굴이 신경 쓰이면서도 한편으론 마음이 편한 그였다.
“누구 맘대로 찜이야?”
“내 맘대로.”
“대체 뭐라는 건지.”
“좋아해.”
“야! 무슨 말만 하면.”
“고등학교 졸업하면 그때, ‘내 꺼’ 하라고 할 거야. 딴 놈한테 눈길 주지 마라. 공부만 해. 책만 보고.”
“내가 공부하는 거 봤어?”
“공부 열심히 해. 우리 캠퍼스 커플하자.”
“난 너 못 따라가.”
“나랑 커플은 하고 싶고?”
“이게!”
하나의 주먹이 높이 올라갔다.
우혁의 얼굴은 밝아졌다. 걸음도 빨라졌다.
“거기 서.”
막 달려서 한참을 앞서가던 신호등 앞에서 우혁이 멈춰 섰다. 그는 따라오는 하나를 향해 빨리 오라는 손짓을 했다.
“약속.”
“뭔 약속?”
“딴 남자 안 본다는 약속.”
“내가 왜?”
우혁은 막무가내로 하나의 손을 끌어당겼고 그녀도 은근슬쩍 새끼손가락을 펼쳐 주었다.
일 년 새에 비슷했던 둘의 키는 한 뼘이나 벌어져 있었고 우혁이 햇빛을 가리면 그림자가 하나의 얼굴로 떨어졌다. 가끔 닿는 그의 손은 심장을 빨리 뛰게 했다.
“도장도 찍고, 사인도 하고 복사에 코팅. 됐다.”
됐다던 우혁은 하나의 손을 놓지 않고 꼭 잡았다.
“뭐, 뭐야.”
“얼굴 빨개진다!”
“내가 뭘!”
하나가 급히 다른 손을 볼에 갖다 대자 신호등이 바뀌었다.
“너 말고 나.”



[미리보기]

“모자는 왜 썼어?”
“그냥.”
“머리 부스스한 거 하루 이틀 보나?”
“야!”
엘리베이터 앞에 선 우혁은 모자를 쓴 하나의 옆모습을 보며 말했다. 하나가 발끈해 고개를 살짝 돌리고 그를 째렸다.
“그러면 하기가 어렵잖아.”
“뭘 해?”
“키스하기가.”
순간 그의 손이 하나의 어깨에 오르는가 싶더니 그녀의 몸을 돌려세웠다.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인 우혁의 얼굴이 하나에게 다가갔다. 캡 모자가 살짝 들려졌다. 입술이 닿고 입술이 열리고 혀가 닿았다. 말랑하고 촉촉한 혀가 그녀의 입 안을 적셨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해 문이 열렸다가 다시 닫혔다.
우혁의 팔은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하나의 팔은 그의 목에 둘러졌다. 그녀의 뒤꿈치는 저절로 땅에서 떨어졌고 그는 더욱 허리를 굽혔다. 더 닿을 수 없을 만큼 가까운 데도 서로 더 당기려고 했다.
닿았던 입술이 떨어졌다. 그녀의 모자는 곧 벗겨질 정도로 들려졌다. 한 손으로 모자를 눌러 준 우혁은 짧게 뽀뽀하고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들어가. 납치하기 전에.”
말과 다르게 그의 팔은 아직 하나의 허리를 잡고 있었다.
“놔야 가지.”
“놔야겠지?”
“아마도.”
“너무 늦었고 출근도 해야 하니까.”
“잘 아네.”
“잘 알아서 탈이지.”
우혁이 또 뽀뽀했다. 그리고 스르륵 그의 팔이 멀어졌다. 하나는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섰다.
“조심해서 가.”
“응.”
하나가 ‘11’이라고 쓰여 있는 버튼을 눌렀다. 문이 닫히기 직전, 우혁의 손이 그 사이로 들어왔고 문이 다시 열렸다.
“왜?”
“하.”
우혁은 커다랗게 숨을 내셨다.
“갈게.”
억지로 입 꼬리를 올리는 그의 모습에 하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헤어지기 싫은 걸 온몸으로 표현하는 우혁이 귀엽기도 했고 문득 고등학생인 그의 귀여운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아마 우혁이 한 번 더 엘리베이터를 잡았다면 그땐 하나가 그를 놔주지 않았을 것이다.

좋고 싫음이 너무 명확한 제대로 된 B형.
세상 곳곳에 이루어지고 있는 로맨스에 놀라고,
가슴 벅차며 ‘나도’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소설을 쓰고 싶은- 그런 사람.
그래서 오늘도 깜빡이는 커서를 노려보며 머리를 쥐어짜는 고통을 은근 즐기는, 아직은 성장 중인 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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