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일반소설]입니다.


“저를 사랑해요?”
자유와 존엄을 위해 도망치는 여자,
“아니.”
그리고 집요하게 그녀의 뒤를 쫓는 남자.

우리는 도대체 무슨 관계인 것일까.



-본문 중에서-

우백경 교수. 인간 대 인간으로서 당신을 경멸해.
그가 나에게서 손을 거두고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가 내 생각을 읽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조금 충격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나는 만족감을 느꼈다. 더 이상 고통스럽고 비참해질 수 없는 상황인데 실성한 사람처럼 웃음이 나왔다.
그가 수심이 내려앉은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나를 증오하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두 번. 세 번. 충분히 그가 보았음에도 나는 계속해서 고개를 아래위로 움직였다. 한 번의 움직임만으로 그를 증오하는 마음이 표현될 수 없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 끄덕이는 횟수가 늘어갈수록 그의 안색은 서서히 창백해졌다. 그는 하찮은 애완동물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반역에 심적 타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가 이리도 동요할 리가 없었다.
우 교수는 변화 없는 표정과는 달리 조금 파리한 얼굴로 내가 쥐었던 권총을 집어 들었다. 그가 표정 없는 얼굴로 총신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죽이고 싶을 정도로?”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그는 내게 자신이 한 행동을 생각하지 않는 것일까.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모든 일은 칼날이 되어 자신에게 고스란히 돌아오는 법이다. 나는 그가 나에게 휘둘러왔던 가혹한 칼날을 그대로 그를 향해 겨누었다. 조금이나마 그를 아프게 할 수 있다면 좋았다. 가학의 본능이란 퍽 대단해서, 나는 순간적으로 고통조차 잊었다.
“그 무엇보다도 당신을 증오해요.”
무의미한 사람에게 들어도 서늘한 말이다. 유의미한 이에게 듣게 된다면 얼마나 두려운 말인가. 나는 이 말로 충분히 그에게 충격을 줄 자신이 있었다. 작은지 큰지는 알 수 없을지언정, 그에게 있어 나는 분명 의미 있는 존재이니! 나는 굳어가는 그의 얼굴을 보며 미소 지었다.
왼쪽 발목은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못 쓰게 되었고
미친 듯이 비명을 질러 갈기갈기 찢어진 목구멍은 침을 삼킬 때마다 피 맛이 났고
위산이 나올 때까지 구역질을 해대서 내장은 엉망진창이었고
고문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가해로 정신은 망가졌고
손목은 골절되고 어깨뼈는 탈골되었는데도
더없이 기뻤다. 나는 만신창이가 되어서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러나 성대가 망가진 까닭인지 아니면 내 귀가 언제 잘못되었는지 그것은 흐느낌으로 들렸다. 그제야 나는 내가 웃던 것이 아니라 울고 있었음을 알았다.
우 교수는 하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뭐가 그리 서러워서인지 울었다. 말없이 눈을 내리깔고서 생각에 잠겨있던 그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더니 나에게로 다가왔다. 얼굴을 닦아주며 그가 나지막이 말했다.
“나와 게임을 해.”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단정한 얼굴에 드리운 그늘이 유달리 눈에 띄었다. 그래서 나는 코웃음을 치려다가 말았다.
“어느 곳으로 가도 좋아. 계획했던 대로 도망쳐.”
나는 깜짝 놀라서 우 교수를 올려다보았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고 있었어?
“룰은 간단해. 그대로 내가 너를 영영 찾지 못하면 너의 승리이고, 내가 너를 찾아내면 나의 승리인 게임.”
나는 현기증이 났다. 그는 전 우주를 무대로 해서 게임을 하자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점점 수렁에 빠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격통을 억누르며 물었다.
“조건은요?”
나는 내가 승리하면 얻게 될 보상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그 보상이 자유라는 것을 나도 우 교수도 알고 있었다. 내가 궁금한 것은 그가 승리할 시에 얻게 되는 보상이었다. 그가 시니컬하게 웃으며 답했다.
“다시 만난다면 그 때에 말하지.”
생경한 말투만 제외하면 그는 완전히 평소의 우 교수로 돌아와 있었다. 나는 그를 노려보았다. 그도 나를 응시했다. 우주에는 수많은 천체가 있다. 사람의 수는 가늠할 수조차 없을 것이며, 혹성에서 혹성으로 옮겨 다니는 사람들도 적잖을 것이다. 그 틈새에 섞여있는 나의 행로를 그가 파악할 수 있을까? 수천 억 개의 행성들 중에서 내가 있는 행성을 찾을 수 있을까? 아무리 우주의 지배자라 해도 그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나는 숨을 한 번 참았다가 내쉬고서 답했다.
“응하겠어요.”

이정운李正云
필명 동하冬河
작가연합 시나브로(http://shinabro.woweb.net) 소속.

출간작
「폐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기라」
「야한夜寒이야기」
「구중궁궐」
「폐황후」
「제신諸神의 분노」
「폐하! 고정하여 주시옵소서!」
「경국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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