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소개

“뭐가 문제야? 남주 같은 건 바꾸면 되지!”

여동생이 쓴 소설, 이렇게 진행하면 인기 없어! 잘 진행되던 이야기를 중간에 자신이 파투내는 바람에 본격 남주가 체인지되고, 그 소설은 대 to the 박!

하지만 이게 뭐야!

눈을 떠보니 내가 그 소설 안에 있고,

거울 속 이 미녀는 바로바로, 이제는 조연이 되어버린 미래 폭군의 누나 ‘알리시아’!

여조도 악조도 아닌 몇 줄 안 나오는 비중 없는 캐릭터로, 부귀영화는커녕 이리저리 치이다 폭군(예정)남동생이랑 같이 목이 잘리게 생겼다!

내가 어쩌자고 그런 소릴 해가지고, 이제 와 혀를 자를 수도 없고…….

안 되겠다! 살아날 길은 이 소설을 벗어나는 것뿐!!

결국 몇 줄 안 나오는 남주의 친구인 상인을 꼬셔 이 나라를 뜨기로 한다.

그. 런. 데.

막상 밤을 함께 지낸 후 보게 된 남자의 외모가 심상치 않다.

“어, 어젯밤엔 분명 그 이름 말고 다른 이름으로 들었던 것 같은데. 으음, 뭐라더라. 라, 란슬롯 님이랬던가.”

“아, 그거 내 친구.”

“…….”

“왜, 문제 있어?”

저기요.

문제가 있냐고? 많지, 많다마다.

……남주가 왜 내 침대에서 나와!

2. 작가 소개

아페르타

3. 차례

3부

#2

#3

#4

#5

#6

#7

4. 미리 보기

“……그래서 지금 폐하께서 여기에 오신 게.”

“당신을 봐야겠다 하시더군. 얼마나 열심히 일하길래 꼭 ‘외박이 필요한지’ 직접 확인을 하시겠다니.”

“……아아아.”

내 머리야.

대장간의 커다란 창으로 바깥 상황을 살펴보던 알리시아가 털썩, 작업용 책상에 걸터앉았다. 머리가 어질한지 이마를 받치고 있자 아레스가 곧바로 다가왔다.

“괜찮아?”

“참 빨리도 물으시네요!”

“……사실 폐하께서 궁 밖 생활을 궁금해하시기도 하고, 또래와 어울리시는 것도 필요하긴 하니까.”

“갖다 붙이지 말아요! 안 속으니까!”

알리시아가 그의 반대편으로 쌩하니 고개를 돌렸다.

난 그런 줄도 모르고!

말은 안 했지만 홀로 속 끓이던 것을 생각하자 헛웃음도 안 나왔다. 여러 가지로 복잡해진 그녀가 팔꿈치를 세워 손바닥에 얼굴을 반쯤 묻었다.

“하, 진짜. 어이가 없어서. 겨우 외박 허락받자고 날 그렇게 부려먹은 거예요?”

“겨우 외박이라니.”

“…….”

느닷없이 진지해진 그가 그녀의 뒤에 섰다. 언젠가 이런 자세에서 어떤 식으로 일이 진행되었는지 떠올린 알리시아가 흠칫 경계했다. 아레스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은 채 비스듬히 고개를 내렸다.

“알려줄까? 지금 내가 어떤지.”

“아레스.”

“당신이 내 사정 알면 그런 말 못 하지.”

그럴 리 없다는 단언을 바탕으로 하는 헛된 질문이었다. 눈을 내리깐 그가 그녀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쓸었다.

손을 뗀 자리에 잠시나마 붉게 남는 자국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깊어졌다.

“다음 주면 에리카 호수 근교에서 기사단 정기훈련이 있거든. 거기에 가문의 별장이 있는데 거기에 뭐가 ‘없는 줄’ 알아?”

“……뭐가 ‘있는 줄’ 아는 거 아니에요?”

“레이나, 저스틴, 조르쥬, 폐하.”

“…….”

“다 없다고. 오로지 우리 둘만 있을 거란 말이야. 알아?”

뒤에서 닿는 그의 뜨거운 숨결에 목덜미가 뜨거워졌다. 물론 더 뜨거워진 곳도 존재했지만 일단 여기는 뭘 하든 적합한 장소는 아니다. 할 때마다 어려운 것이 자제라 쳐도, 그녀에 한해선 갈수록 어려워졌다.

밖에서 들리는 시끌시끌한 함성에 아레스가 억지로 그녀의 어깨에서 손을 떼어냈다.

“뭐, 내가 좀 급하긴 했지. 그 전에 폐하의 허락을 받아야 했으니…… 알리시아?”

그가 의아하게 눈썹을 치켜세웠다. 한번 돌아볼 법도 한데. 알리시아는 그대로 아무런 반응이 없다. 간간이 숨을 쉬는 것만 아니면 인형이라 봐도 믿을 법했다.

“그래서 그렇게까지 하셨단 거예요? 겨우 꼬마 애 하나 속이려고?”

“꼬마라니. 무엄하군, 황제 폐하께.”

“…….”

쿡, 그가 작은 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머리칼을 감았다. 한 손으로 달빛 같은 머리칼을 받치며 짐짓 꾸짖는 듯한 표정이 황궁의 수호신마냥 근엄했다.

“우리 폐하께서 의외로 눈썰미가 좋으시거든. 특히 특정인물에 대해서는.”

“……그래서 내가 이 꼴로.”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해야지. 아니면 아예 보란 듯 쓰러져도 좋고. 내가 있으니까.”

“이깟 걸로 쓰러지라구요?”

“뭐 어때. 난 수전증도 생긴 판에.”

“…….”

이 남자가 이런 남자였던가.

알리시아가 허망해져 시선을 창밖에다 던졌다.

도무지 소동이 끝날 기미가 없다. 물 만난 조르쥬가 또 누구 하나를 냅다 던져 지옥의 문턱까지 보내버렸다. 그 옆에서 주먹을 꼭 쥐고 흥분한 카이가 그새 친구를 사귀었는지 웃음을 터트리는 모습이 또렷하게 보였다.

“남자들이란 하나같이.”

“난 저런 유치한 짓 안 해.”

“그러세요?”

그녀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눈을 내리깔았다.

누구는 유치해지고 싶어 유치해지는 줄 아나. 이 잘난 남자 높은 콧대를 어떻게 꺾어줘야 속이 시원할지 잠시 주판알을 튀겨보았다.

“음…… 그렇죠. 각하께서 저렇게 유치한 짓을 하실 리 없겠죠.”

“그럼. 저거야…… 일종의 사고 같은 거지.”

아레스가 그녀의 옆에 나란히 서서 조르쥬를 향해 한심한 듯 인상을 썼다.

여기 누구 더 없어! 한판 더 붙어볼 상대를 찾아 포효하는 입 모양이 멀리서도 또렷했다. 한심한 놈, 남 일처럼 중얼거리는 그의 혼잣말에 알리시아가 빙긋 입꼬리를 올렸다.

“그나저나 당신은 저 모르게 폐하와 꽤 많이 친해지셨나 봐요? 하긴, 약혼식 날도 두 분이서 나란히 제 비밀을 공유하셨으니.”

“왜? 걱정돼?”

그가 은근한 미소로 그녀를 떠보듯 살폈다. 얼마 전 집무실에서도 괜히 겁을 집어먹고 입술을 내밀던 것이 떠올라 벌써부터 몸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얼마나 또 귀엽게 나오려나, 기대 가득 바라보자 알리시아가 창틀에 스르르 팔꿈치를 얹고 턱을 괴었다.

“……뻔하죠, 뭐. 내가 그거 안 듣는다고 모를까 봐서요?”

“그럼 뭔데?”

“……흥.”

이 남자가 누구 놀리나, 그녀가 원망 가득 그를 흘겼다. 내뱉는 말도 토라진 듯 퉁명스러워졌다.

“제 예전 남자관계에 대해 주절주절 다 말했겠죠, 뭐. 철딱서니라곤 없이.”

“…….”

움찔. 어쩐지 그 든든하던 아레스의 팔이 표 나게 굳어진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는 양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에요?”

“……맞아. 맞는데 정확히 어떤 건지 아냐고.”

“아니, 걔가 뭘 어느 정도까지 불었길래.”

걱정 가득 아레스를 돌아보는 그녀의 눈망울에 혼란이 번져나갔다. 물론 그보다 더 혼란스러운 사람은 따로 있었다.

“……한두 명이 아닌가 본데.”

“각하도 별게 다 궁금하시네요. 그 많은 걸 일일이 언제 다 따져요.”

“……그래도 난 꼭 알아야겠는데.”

언뜻 목소리가 꽉 잠긴 것처럼 들렸다. 꽉 악문 이가 깨지지 않을까 싶을 만큼 짙은 목소리였다.

자포자기한 알리시아가 한숨과 함께 눈을 내리깔았다.

“들어놓고 뭘 또 물으세요? 뭐…… 최근이라면 내 앞에서 고백 안 받아줄 거면 용광로에 뛰어들겠다 했던 한스 말인가.”

“…….”

“아녜요? 그러면…… 아아, 나랑 키스했다고 헛소문 내고 다녔던 애슐리를 말하는 건가. 그런 건 키스라고 할 수도 없는 건데. 걔도 참, 그게 언제 적 일이라고…….”

창가에 기대어 부끄러운 듯 옛 이야기를 꺼내는 그녀의 뺨이 붉어졌다. 그럼에도 갸웃대는 고개가 아직도 한참이나 더 남았음을 짐작하게끔 했다.

“……하긴 걔한테야 추억이라면 추억이겠죠. 막상 들이대는 걸 어찌할 수도 없으니.”

“……이름이 애슐리라고?”

“네. 왜 그러세요?”

두 손을 맞잡은 그녀가 아레스를 바라보다 말고 흠칫했다. 웃는 얼굴에 입가만 떨리는 살벌한 위화감. 전쟁터에서 보았다면 그대로 무너질 만큼 어마어마한 기세였다.

그러나 여기는 전쟁터가 아닌 대장간, 이를테면 그녀의 본진이다.

“각하도 참, 누가 보면 질투하시는 줄 알겠어요.”

“……그럴 리가.”

“그럼요. 각하께서 유치하게 그러실 리 없죠.”

알리시아가 그의 어깨를 털어주며 이해심 많게 눈을 휘었다. 반사적으로 따라 웃긴 했지만 서늘하게 풍겨나는 눈매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뜨겁게 일렁였다.

“그래서, 당신은 꽤 좋았나 보네?”

“글쎄요. 그걸 좋다고 해야 하나, 아니라 해야 하나.”

“……대체 어떤 자길래.”

“오래전 일이라 기억은 잘 안 나는데 얼굴은 곱상했어요. 머리는 갈색에 성격은 좀 거친 편이라, 그러고 보니 저기 조르쥬 님과 많이 닮긴 했네요.”

“……그래. 그렇군. 잠시만.”

“끝까지 안 들으세요? 이제 막 제대로 생각이 나는 중인데…….”

“아니, 됐어.”

단호히 거절하는 그의 목소리가 피를 졸이듯 음산했다.

추억을 회상하는 아리따운 아가씨처럼 굴던 그녀가 돌아섰을 때, 이미 아레스는 그 자리에 없었다. 한참이나 멀리 떨어진 대장간 입구에서 환영처럼 검은 옷자락만 나풀거렸다.

흥, 알리시아의 가벼운 코웃음이 그가 있던 빈자리를 채웠다.

“……그리고 자그마치 스무 살이나 연하랍니다.”

홀로 속삭이는 그녀의 혼잣말에 얄미운 웃음기가 가득했다.

그러고 보니 애슐리는 잘 자라고 있을까. 자신의 뺨을 딱 감싸 쥐고 저돌적으로 입술을 들이밀던 밀레 아저씨네 늦둥이를 떠올리자 그녀의 미소가 의미심장해졌다.

‘거봐요, 누가 유치해지고 싶어서 유치해지나.’

모처럼 기분이 가뿐해진 그녀가 이번에는 진짜 웃음을 터트렸다.

뭐, 나한테 그렇게 몸이 달아오르셨단 거지.

제가 입을 뗄 때마다 서서히 얼굴이 굳어가던 아레스가 아직도 눈앞에 있는 것만 같다.

‘그러니 정도껏 놀리셨어야죠.’

그녀는 창가에 폴짝 걸터앉았다.

또래들 사이에서 신이 난 카이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사르르, 미소가 맺혔다. 얼마 만에 맞이하는 평화로운 오후일까. 의기양양 검은 태양의 일원이었을 수습기사가 나동그라진 모습도, 안절부절못하는 노엘의 모습도, 나를 이길 자 누구냐며 양팔을 우람하게 펼친 조르쥬마저도…….

“……어어.”

알리시아의 눈이 창가에 바짝 붙었다. 웬 검은 그림자가 조르쥬를 가로막는가 싶더니 그 큰 덩치가 공중에서 한 바퀴를 돌아 내리꽂혔다. 순식간에 일어난 천재지변에 대장간 안팎의 모든 소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저 남자가 왜 저기에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