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소개

“지금 이 순간부터 건후 씨와 바른 결혼 생활을 하고 싶어요.”

“해. 대신 내 장단은 바라지 말았으면 좋겠군. 바른 결혼 생활? 그래도 아내니까 건투는 빌어줘야겠지. 열심히 해봐.”

유림은 건후와 꼭 결혼을 해야만 했다. 집안끼리의 정략혼이지만 성실하게 임하려 하는데, 도통 이 남자 도건후가 협조해주지 않는다.

여러 가지 의미로 가슴 뛰는 신혼생활, 도건후와 허유림을 휩쓸어버린 그 물결의 종착지는 어디일까.

“그렇게까지 내 취향이 되려는 이유가 뭐야?”

그래도 혹시나 하는 기대로 물어본다.

“그야 건후 씬 내 남편이잖아요.”

“…….”

“결혼을 했으니까 이왕이면 남편 취향이 되면 좋잖아요.”

“결혼하지 않았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았겠군.”

기대가 충족되지 못했기에 말해줄 수가 없다.

그 내면에 내가 없어서 말할 수가 없다.

당신이 내 취향이라서 나는 생각보다 괴롭다.

2. 작가 소개

윤아진입니다.

http://blog.naver.com/present_aa

3. 차례

#6

#7

#8

#9

#외전 1

#외전 2

4. 미리 보기

도대체 아내의 영역은 어디까지일까? 아니라면 아닌 것도 서운하게 느껴지는 게 아내인 것일까? 부부 사이에 질투는 안 된다고 해놓고 이건 무엇일까?

질투?

누구를 향한.

배신?

무엇 때문에.

“하아.”

이게 전부 다 정해진 씨 때문이야.

유림은 가방을 세게 쥐었다.

“호텔 들어가서 쉬고 싶어요. 아침부터 서둘렀더니 조금 피곤해요.”

“너무 내 생각만 했군. 들어가서 쉬어. 다음에 같이 타자.”

“네?”

“취미 생활을 같이 하고 싶다며. 보는 것보다 타보는 게 좋을 거 같아서 준비했는데, 쉬어.”

너 지금 좀 질척거린 거 같은데.

건후는 마음의 소리를 외면했다. 피곤하다는 아내에게 은근슬쩍 여지를 흘리는 자신을 보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떡밥을 덥석 문 유림은 뒤를 돌아 눈을 영롱하게 빛냈다.

“그 말은 나도 탈 수 있다는 거죠? 내가 타도 괜찮아요?”

“괜찮아.”

어린아이 같은 모습에 건후가 피식 웃었다.

유림은 평소 ‘호’를 강하게 드러내지 않았다.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남들이 하자면 하는 대로 움직이는 편에 더 가까웠다. 그것이 건후의 눈에 보이지 않을 리 없었다. 그랬기에 웃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근데 나 차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요.”

“내가 알고 있으니까 상관없어.”

“속도에 적응하지 못해서 무지하게 행동할지도 몰라요.”

“그런 우려 느끼지 않도록 평소보다 살살 할게.”

잠잠하던 유림의 얼굴이 다시 확 붉어졌다. 첫날밤, 그는 아프지 않게, 살살 하겠다고 했었다. 그렇게 들어와놓고 다시 들어온다. 행동 하나에, 말 하나에, 휘둘리고 있었다. 마치 사랑에 빠진 바보처럼 행동한다.

사랑,

사랑,

사랑!

“단어는 올바르게 써야 한다면서요. 그럼 성분도 마음대로 생략하지 마요!”

목적어가 빠졌다. 운전을 살살 한다고 말을 해야지, 의미가 전달되지.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민망해서 억지를 부리고 싶은 유림이 뒤돌아섰다. 다행히 호텔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 같기에 건후는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중얼거렸다.

“권태기인가.”

…….

조만간 밥 먹는 모습도 보기 싫다고 할 것만 같은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건후의 입술에서 낮은 헛숨이 새어나왔다.

이러고 있다, 도건후가.

하지만 낯선 모습도 숙명처럼 받아들이게 된 그가 앞서 걷고 있는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잠시 뒤.

유림은 헬멧을 쓴 채 건후의 옆자리에 앉았다. 개조를 한 것인지 차는 상당히 낯설었다. 설렘과 긴장으로 손에 땀이 찬 유림의 손등에 건후의 손이 닿았다.

“긴장하지 마.”

“네.”

“내가 매력을 느끼는 부분이 당신에게도 전해졌으면 좋겠군.”

같이 취미생활을 즐기는 이유를 지금 이 순간 깨달은 그가 말하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내 두 사람을 태운 차가 굉음을 내며 출발했다. 살살 하겠다고 했지만 기본적인 속도가 있는지라 유림의 몸이 작게 휘청거렸다. 직선 코스를 달릴 때 건후가 유림의 손을 살며시 쥐었다. 찰나의 순간 닿은 접촉이 청심환이라도 되는 것처럼 긴장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건후는 사람이 느끼는 극한의 짜릿함을 유림에게 전달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모터스포츠를 즐기는 매력이 충분히 전해지도록 서서히 그녀의 기분을 고조시켰다. 코너를 돌 때도 계산보다는 유림의 안전을 생각했고 그녀의 감정을 헤아렸다. 능숙하기에 나올 수 있는 스킬이었다.

“심장이 두근거려요. 막, 막 두근거려요.”

차에서 내린 유림은 헬멧을 벗겨주는 건후의 앞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이거 정상이죠? 이렇게 가슴이 뛰는 거 이상한 거 아니죠?”

그러고는 건후의 손을 덥석 잡아 가슴으로 가져갔다. 태어나서 짜릿함으로 가슴이 두근거린 적은 처음이었다. 우물 안 개구리라는 것을 알지만 역시 인간은 작은 존재였다. 신생아가 세상을 배워가듯 그녀도 또 다른 세상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여우였다면 꼬리가 섰을 거예요.”

그만큼 흥분을 한 것이다. 그럴싸한 말을 하고 싶은데 당장 느끼는 대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유림이 느끼기에는 적어도 이곳은 본능이 앞선 곳인 듯했다.

그때였다. 건후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유림은 무슨 일이냐는 듯 눈을 깜빡거렸다.

“이실직고할 줄은 전혀 몰랐는데.”

유림은 마녀에 구미호였다.

“네?”

“내가 정상이었지.”

“무슨, 앗.”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을 그녀에게 넘어가지 않으려고 무던히 버티던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어기제가 만들어낸 환상이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던 그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는 열기가 눈에 띄게 뜨겁다. 수컷의 강한 향이 진하게 풍겨지는 열기였다.

오랜만에 느껴본 짜릿함에 흥분을 한 건후는 당장 유림을 안고 싶었다. 그녀의 안으로 흥분을 밀어넣어야만 진정이 될 것 같았다. 익사이팅(Exciting)한 하루의 화룡점정은 결국 허유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