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형님이다, 으악!”
익현은 눈치 없이 중얼거리는 웅의 뒤통수를 갈겨 주었다. 여자는 어딜 다친 모양인지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지석을 돌아보자, 지석이 고개를 저으며 물러났다.
“전 신사가 아닙니다.”
그도 신사는 아니다. 하지만 어린 여자였다. 익현은 절대 그 사실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난 이상하게 어린것들한테 약하다니까. 공 사장 조카도 그렇고 저 여자도 그렇고, 안 나서도 되는데 꼭 나서게 된다. 에잇, 난 왜 이렇게 착해선! 그래서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살아가느냔 말이다.
익현은 자신의 착한(?) 천성을 탓하며 여자에게로 다가갔다. 멀리서 본 것처럼 여자의 체구는 자그마했다. 키가 160센티미터도 채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괜찮습니까?”
발을 삐었는지 발목을 주무르고 있던 여자가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가장 먼저 그의 시선이 쏠린 것은 여자의 커다란 눈이었다. 검은 동공이 얼마나 크고 까만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그대로 빨려들어 갈 것만 같았다.
미쳤군.
살짝 고개를 저은 익현이 여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주저하던 여자가 조심스레 그의 손을 잡았다. 얼굴처럼 뽀얀 손이 그의 손에 쏙 들어왔다. 따스한 체온이 전해지자, 심장이 확 조여들었다. 그는 의도치 않게 가슴께가 뻐근해지자 더럭 걱정이 됐다.
내가 혈압이 높나? 그러고 보니 건강검진은 또 언제 했지?
요즘은 젊은 사람도 성인병에 걸린다니까, 검사를 해봐야겠다. 그렇게 다짐한 익현은 제대로 일어나지 못하고 휘청거리는 여자가 또다시 쓰러지지 않도록 허리를 잡아 중심을 잡아 주었다. 그 동작으로 인해 여자의 허리가 얼마나 가는지 알게 됐다. 맞닿은 양손의 둥근 공간이 남을 만큼 가늘었다.
난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고!
뜨악해진 익현이 얼른 여자에게서 떨어졌다. 그러자 조금 절룩거리기는 했지만 넘어지지 않은 여자가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클럽 안으로 들어갔다.
이상하다, 왜 말을 안 할까?
익현은 미간을 좁힌 채 총총히 사라지는 여자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함께 그 모습을 보던 지석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말을 못하나 봅니다.”
그래서 억울하게 당하면서도 항변을 못했던 것이다. 진즉 알았다면 봉변을 당하기 전에 도와줄 것을……. 손자국이 남았을 것이 분명한 작은 얼굴을 떠올리자, 행패를 부리고 사라진 여자를 향한 살의가 샘솟았다. 그와 함께 분명 아팠을 텐데, 자그마한 여자가 어떻게 그토록 담담한 표정을 유지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 생겼다.
마치 현실이 아닌 것처럼 고요한 침묵을 깬 것은 웅의 울먹거림이었다.
“형님.”
마법이 깨졌다. 고개를 돌린 익현은 바지 지퍼를 움켜잡고 울먹거리는 웅을 노려보았다.
“안 벗고 뭐 해.”
“형님, 저 아가씬 도와주시면서 저한테는 왜 이러십니까? 왜 형님 행동에는 일관성이 없는 거냐고요. 자꾸 이러시면 형님 미워할 겁니다.”
“아주 긴 밤이 될 것 같구나.”
사정없이 앙탈을 부리는 곰 대가리를 보며 익현이 주먹을 말아 쥐는 사이, 지석은 퇴근 인사를 했다.
“내일 뵙겠습니다.”
“어딜 가, 나 좀 살려 줘! 으아악!”
그날 밤은 정말 길었다.

정경하

행복한 이야기에 즐거워하는 사람.

출간작

<기억1,2><인연><수박밭에서 만나다><사랑초><섹시 레이디><그 길의 끝에서><두근두근><사랑한다면><서슬><사랑에 미쳐1.2><당신의 연인><당신의 천사><모란1,2><그 밤이 지난 뒤에 1,2><이 길 건너 당신에게><낯선 남자><느낌>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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