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소개

“당신께 더 어떻게 보답을 해야 할지…….”

“괜찮아요. 전 더 이상 바라는 게 없거든요. 인생은 말이에요, 자기가 번 돈으로, 자기의 힘으로 살아가야 하는 거예요.”

돈에 팔려가는 결혼이 끔찍해서 공작이 내민 마지막 기회를 필사적으로 잡긴 잡았는데…… 이억 골드의 상속 예정자라고?

공작님 어디 아프세요? 제가 아는 분 중에 가장 미치셨어요!

당신은 나의 소중한 인재니까요. 당신을 위해 이 정도쯤이야!

돈놀이의 천재 도린 브래드쇼의 역대급 금융 판타지!

“제가 당신한테 정말 반했을 수도 있잖습니까?”

“전 이해관계가 확실한 걸 좋아해요. 왜 저한테 이렇게까지 하시는지, 명확하게 밝히지 않으면 저는 공작님을 믿을 수 없어요.”

“원래 받을 사람이 없었던 재단입니다. 그걸 미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렇게 해야죠.”

“그렇지만…….”

“전 후회하고 있습니다. 당신을 처음 본 순간 바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시간을 낭비한 것을. 당신을 손에 넣었으니 만족합니다.”

2. 작가 소개

김코끼리

오래 생각나는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 출간작

사슴뿔 황비님

3. 차례

#3. 해외투자의 법칙 :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지 말라

#4-1. 선물의 법칙 : 거물은 함부로 건드리지 마라

#4-2. 선물의 법칙 : 거물은 함부로 건드리지 마라

4. 미리 보기

“잠시만 소파에서 눈 붙이세요.”

“…….”

“한 시간 뒤에 깨워드리죠.”

“괜찮아요.”

누가 봐도 안 괜찮은 얼굴이다. 고장 난 라디오처럼 같은 말만 반복하는데, 데이먼도 슬슬 화가 났다.

“이 이상으로 고집을 피울 필요가 있습니까? 고작 스파이 하나 알아내려고 이러는 겁니까?”

“제 개인적인 문제예요.”

“그냥 지기 싫은 거겠죠.”

처음으로 도린이 데이먼을 노려보았다. 그는 한숨을 쉬었다.

“항상 당신이 강하다는 걸 증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은 쉬어야 할 때도 있는 거예요.”

“남은 일은 제가 처리하죠.”

“공평하지 못해요. 클라크 씨는 도와주는 사람 없으니까.”

“좋아요, 그러면 지나가던 고양이가 처리했다고 치죠. 그건 사람이 아니니까 괜찮지요?”

“무슨 말도 안 되는…….”

도린은 말을 삼켰다. 데이먼이 몸을 숙였기 때문이다. 그가 뭘 하려는지 보려던 그녀는 시야가 그대로 올라가는 걸 보고 식겁해서 잠옷자락을 정리했다. 데이먼이 그녀를 의자째로 들어올린 것이다. 그는 미친 짓을 해놓고도 태연하게 그녀를 올려다보며 웃었다.

“과년한 아가씨 몸에 손을 댈 수는 없지요.”

‘미친, 힘이 얼마나 센 거야?’

그는 그녀를 의자째 둘러메고 소파 옆으로 가서 그녀를 내려놓았다.

“자, 이제 주무세요.”

“공작님, 이건 무례한 짓이에요.”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그녀를 데이먼이 붙잡았다.

“당신이 말을 듣지 않겠다면 어쩔 수 없지요.”

말을 듣지 않으면? 손이라도 올릴 건가?

절대 그가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도린은 불경한 생각을 했다. 데이먼은 손을 올리기는커녕, 의자 앞에 쪼그려 앉아 자기 두 손으로 그녀의 두 손을 붙잡았다. 워낙 큰 손이라 손목까지 덮였다. 그녀는 빤히 그의 손에 잡힌 제 손을 쳐다보았다.

데이먼은 엄격하게 말했다.

“저는 이억 골드를 후불로 치를 것을 대가로 당신의 재능을 샀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지금 그 재능을 허락도 안 받고 마음대로 낭비하고 있는데, 이건 엄연한 계약위반 아닙니까?”

“…….”

“은행을 나가겠다고 마음대로 말할 때부터 말입니다.”

그래, 그는 이런 사람이었지. 손을 올리기는 무슨.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이렇게 나오면, 도린으로선 도저히 할 말이 없다.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잠시 뒤에 그녀는 작게 중얼거렸다.

“……죄송해요.”

그리고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고 소파에 걸터앉았다. 데이먼은 그제야 엄격한 표정을 지우고 씩 웃었다.

“자, 이제 고양이한테 한 시간만 맡겨놓고 쉬는 겁니다.”

“…….”

그녀는 상체를 기울여서 소파에 누웠다. 데이먼이 그녀가 두른 담요 위로 자기 코트를 벗어서 한 겹 더 덮어주었다. 따뜻하고 포근했다. 그제야 잊고 있었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저절로 눈꺼풀이 덮였다.

데이먼은 그녀의 머리맡에 걸터앉아서 그녀의 얼굴에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넘겨주었다. 숨 쉬는 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그런 배려는 낯설었다. 사심이 없는 손, 긴장하지 않아도 되는 접촉. 전부 그녀한테는 익숙하지 않았다. 도린은 흐릿한 눈으로 데이먼을 쳐다보았다.

‘친절하네.’

그럴 필요 없는 일인데도.

지금까지는 그냥 놓치지 않으려고 친절을 베푼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말도 안 되는 건 조금만 깊이 생각해도 알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다정하게 굴지 않아도 어차피 그녀는 이자를 떠날 수 없다. 떠나봤자 갈 곳이 없으니까. 브래드쇼 저택보다는 여기가 나으니까. 그걸 이자도 뻔히 알 텐데 왜 자꾸 친절을 베푸는 걸까.

처음에 도린이 고집을 부렸던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지금까지 그녀를 이렇게 걱정해준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가 돈을 벌어다 주고 스파이를 밝혀내면, 이 사람한테는 당연히 좋은 게 아닌가? 분명히 그러니까 이 사람도 그녀를 고용한 걸 텐데, 왜 굳이 그녀를 말리고 걱정하는지 모를 일이다. 아버지도, 에릭도 그러지 않을 텐데.

그녀는 눈을 감았다.

데이먼은 일을 하는 종종 잠든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는 자기 스스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대해 생각했다.

‘왜 화가 났을까?’

도린 브래드쇼의 행동은 아예 이해할 수 없는 범주가 아니었다. 그렇게 화낼 일도 아니고, 게다가 어디까지나 본인의 사정일 뿐이다. 데이먼이 그녀의 보호자도 아니고 왜 그녀한테 이래라저래라 하는가? 쓸데없이 화를 내다니. 사람을 허락도 없이 둘러메고. 아무래도 잠을 못 자서 예민해진 건 도린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일어나면 사과해야겠어.’

그는 도로 작업에 몰두했다.

그리고 데이먼은 정말로 정확히 한 시간 뒤에 도린을 깨웠다. 신음을 내며 상체를 일으키는 도린에게 그는 짧게 사과했다.

“방금 전에는 억지로 재워서 미안합니다.”

그녀는 머리가 부스스한 채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몽롱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도 쓸데없이 고집을 피웠어요.”

그건 진심이었다. 실제로 효율이 떨어질 때는 좀 눈을 붙이는 게 낫다. 그걸 아는데도 오기 때문에 필요 없는 떼를 썼다. 그녀는 일어나서 책상에 도로 앉았다. 겨우 한 시간 잤다고 정신이 상당히 또렷해졌다.

그러나 또렷한 정신이 무색하게도, 그녀가 해야 할 일 거의 대부분은 이미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장이 끝나기도 한참 전에 마지막 일까지 끝난 것이다. 이것으로 도린의 내기는 완전히 종료된 셈이다.

“…….”

도린은 맞은편 소파에서 다리를 꼬고 딴청을 피우는 데이먼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는 터무니없는 일을 해놓고도 아무것도 모르는 척 태연하게 그녀한테 되묻기까지 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그녀는 서류를 들쳐보며 대답했다.

“세상에는 아주 똑똑한 고양이도 있는 모양이에요.”

“그렇습니까?”

“해야 할 일을 모조리 처리해주는.”

“신기하네요.”

도린은 웃었다. 보고 있는 사람이 놀랄 만큼 부드럽고 싱그러운 웃음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데이먼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고마워, 야옹아.”

순식간에 야옹이가 된 데이먼의 표정이 좀 미묘해졌다. 도린은 여전히 데이먼을 보면서 부드럽게 말했다.

“네 덕에 기분이 나아졌어.”

그 말이 진심이라는 건 분명했지만, 데이먼은 여전히 묘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저한테 말을 편하게 하고 싶은 거라면 그래도 됩니다.”

“네? 무슨 소리세요?”

도린은 태연하게 되물었다. 이제 할 일이 끝났다고 생각하니 마음에 놀랍도록 여유가 생겼다. 그녀는 농담을 걸었다.

“제가 어떻게 공작님께 말을 편하게 하겠어요? 저희 사이에 계급이 몇 단계인데.”

“……참고로, 저는 상관없습니다.”

“공작님은 저한테 여전히 말 높이고요?”

“그렇죠.”

“저는 ‘데이먼, 저거 가져와.’ 이러고요?”

“안 될 거야 없지요.”

도린의 눈이 커졌다. 그녀는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이제 해가 뜰 시간이다. 막 떠오르는 태양빛이 커튼 사이로 스며들어왔다.

“데이먼.”

도린의 입술이 달싹였다. 말하고 나서 그녀는 제풀에 우스운지 까르르 웃었다. 내색은 안 해도 역시 끝난 게 좋은 모양이었다.

반면에 데이먼은 웃을 수가 없었다. 머리를 망치로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다. 이유 모를 충격이 가슴을 세게 관통하고 지나갔다. 그는 그 충격이 어떤 감정인지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새벽의 빛과 피로한 정신이 잠시 착란을 일으켰다 믿었다.

“역시 안 되겠어요, 공작님. 저는 이게 편하네요.”

“……그렇다니 정말 다행이군요.”

“그렇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