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소개

우리 삶이 그렇죠 뭐. 어떻게 매일매일이 이벤트일 수 있겠어요.

건실, 착실, 성실한 간호사 오나라. 인생을 즐겁게 살리라 다짐했지만 가끔씩 찾아오는 외로움은 건강의 적!

결국 나라는 룸메이트를 구하기로 하고 평소 즐겨 읽던 웹툰 ‘서른 살 사춘기’의 작가 영인과 함께 집을 사용하기로 한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야? 동갑내기 여자가 아닌 일곱 살 연하 꽃미남 청년이 들어오다니!

엉겁결에 동거를 시작한 두 사람. 언제나 방글방글 웃는 영인이 밉기도 하고 마음에 들기도 하는데…….

고영인과 함께 살기 시작한 지 108일째, 천재지변이 일어나버렸다!

2. 작가 소개

신민영

사소한 인생을 근사하게 살고 싶다.

촌스러운 낭만을 기억하면서.

블로그 : http://blog.naver.com/ajwannabe

▣ 출간작

불가분의 연애

불꽃(eBook)

유혹의 기술(eBook)

뜻밖에, 우리는(eBook)

고양이가 사는 나라(eBook)

3. 차례

#63. 망가진 혹은 망가트린

#64. 우리는 선처럼 나란히 누워

#65. 어른 아이

#66. 아픈 손가락

#67. 채워지지 않는 마음

#68. 잘못된 방향

#69. 쿨하지 못해 미안해

#70. 착한 애 같던데

#71. 의심스러운 Win-Win

#72. 질투

#73. 사랑해요. 사랑해줘요.

#74. 우리, ……할까?

#75. 고양이가 사는 나라

4. 미리 보기

나라는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심장을 두 손으로 꾹 눌렀다.

금방이라도 불쑥 눈물이 날 것 같은 심정이었다.

“장난치지 마.”

나라는 애써 웃으며 남자의 품에서 빠져나올 채비를 했다.

영인의 손이 나라의 손등을 덮는다.

“누나를 사랑하는 데, 나 한 번도 장난이었던 적 없어.”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이는 목소리에는 장난기가 조금도 없었다.

“주머니에 손 넣어봐.”

영인이 시키는 대로 카디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따스하게 스치는 영인의 손가락 사이에서 다른 질감의 딱딱한 무엇이 손에 걸렸다.

동그랗고 매끄러운 감촉.

눈으로 보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물건, 반지였다.

영인은 주머니 손에서 손가락을 움직여 그 이질적인 감촉의 동그라미를 여자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운다.

나라는 다시 숨을 삼켰다. 뭉근한 감정의 덩어리가 나라의 마음에 벅찬 무게로 내려앉았다.

태어나 느껴보았던 것 중에 단연 으뜸인 행복감이 온 마음을 뒤흔들었다.

“나를, 오나라, 당신의 나라에 살게 해줘.”

영인의 커다란 손이 나라의 손가락 사이사이를 틈 없이 잡는다.

내심 담담하고, 용감하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잡고 있는 손끝이 바르르 떨리고 있다는 것을 안다. 마주하고 있지 않았어도 나라는 영인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마른 선인장처럼 가시 돋친 자신에게 너는 꽃이라고 말해주던 그날처럼, 진지하고 깊은 눈빛으로 대답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걸.

마음이 큰 소리로 Yes를 외치며 나 역시 너와 평생을 함께하고 싶다고 달려 나간다.

하지만.

그 열뜬 감정에 눈멀어 달려가기엔 이성의 두 다리가 너무 무거웠다.

‘난 아직 너를 믿을 수 없다는 뜻일까? 아니, 그것은 절대 아니다. 나는 나보다 너를 더 믿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무엇이 너를 향한 나의 두 다리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가. 나는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나라는 자신이 누군가와 가정을 이루고 평생을 살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 일이 없었다. 그것은 선택받은 일부의 사람에게만 허용되는 권리라고 생각했다.

사랑하는 엄마, 단 한 순간도 선량함을 잃지 않고 평생을 헌신하고 희생했던 엄마도 성공하지 못했던 그 결혼이라는 것을 자신이 해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없었다.

그 실패가 만들어 낸 수많은 아픔들이 두려웠다.

영인은 품에 안겨 있는 나라가 조금 떨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누나, 왜 이렇게 떨어?”

단단히 결박하고 있던 영인의 팔이 스르르 풀리고 약간의 틈이 생겼다.

나라는 최대한 침착해지려고 노력하며 등을 돌려 영인을 바라본다. 한참, 영인의 눈을 들여다보던 나라가 영인의 뺨에 손을 얹는다.

“영인아, 왜 그래. 왜 그렇게 급해? 너답지 않게.”

“난 진심이야. 평생 같이 살고 싶어.”

영인은 물러나지 않았다.

“우리 지금도 충분히 그렇게 하고 있잖아.”

“부족해. 그거로는 안 돼. 난 해주고 싶은 게 더 많거든.”

혼란스러워하던 나라의 눈동자가 초점을 찾고 다시 묻는다.

“혹시 형네 집으로 들어가라고 했던 말 때문에 그래?”

영인은 묵묵하게 입을 다물었지만 끝내 부인하지 않았다.

나라는 남은 손으로 영인의 뺨을 감싼다.

여자의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서 반짝, 작은 보석을 매단 백금 반지가 빛났다.

“네가 찾아보겠다던, 우리에게 좋은 길이 이거야?”

“응. 이게 내 결론이야.”

입술을 깨문다.

영인의 눈은 여전히 진지했고, 흐트러짐이 없었다. 단박에 그러마 대답하지 않는 나라의 대답도 어느 정도는 각오했다는 눈치다.

“갑작스러운 거 알아. 그렇지만 생각 없이 하는 소리 아니야. 나 계획이 있어.”

“……계획?”

“난 자신 있어. 누나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어. 그건 내 의무이기도 해. 왜냐면,”

나라는 얼버무리는 구석 하나 없이 또박또박 정리해가는 영인의 말을 들으며 어안이 벙벙했다.

영인이 제 뺨에 닿은 나라의 손을 잡는다.

“나는 너니까. 네가 나니까.”

“영인아.”

“누나가 좋으면 나도 좋고, 누나가 슬프면 나도 슬퍼. 나는 어떤 말을 들어도 상관없지만, 누나는 달라. 사람들이 함부로 흠집 내지 못하게 할 거야. 가장 안전한 길을 걷게 할 거야. 그게 내 여자를 지킬 방법이라면 난 못할 게 없어.”

나라는 그대로 영인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가슴이 터질 것처럼 뛰어서 그렇게라도 하지만 그대로 까무러칠 것만 같았다.

영인의 그 진지한 눈을 바라볼수록 내가 과연 이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를 생각하게 되는 소심하고, 유약한 자신을 떨쳐버리고 싶었다.

이렇게 거센 풍랑 같은 고백에 그저 속절없이 떠밀리고 싶었다.

비록 여전히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고, 손대기만 해도 터질 것 같은 불안이 자신의 발목을 놓지 않고 있다고 해도 무작정 믿고 싶었다.

“나 받아줄 거지?”

조금 전보다 더욱 확실하고 분명한 목소리가 나라의 대답을 재촉한다.

나라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예스! 예스. 예스…….”

세 번이나 되는 허락이 각각 다른 감정을 입고 흘러나온다.

기뻐서, 행복해서, 그리고 한낱 꿈처럼 깨져버릴까 불안해서 간절히 붙드는 마음으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기쁘면 눈물이 난다. 그래서일까, 마음은 세상을 한 품에 얻은 것처럼 벅차고 또 벅찬데 어울리지 않게 설운 울음이 터졌다.

“울지 마. 이제 웃을 일만 있을 거야. 그렇게 해줄게.”

등을 토닥이는 남자의 손이 다정했다.

이른 첫눈이 싸라기처럼 흩날리는 11월 마지막 주, 어느 늦은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