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소개

우리 삶이 그렇죠 뭐. 어떻게 매일매일이 이벤트일 수 있겠어요.

건실, 착실, 성실한 간호사 오나라. 인생을 즐겁게 살리라 다짐했지만 가끔씩 찾아오는 외로움은 건강의 적!

결국 나라는 룸메이트를 구하기로 하고 평소 즐겨 읽던 웹툰 ‘서른 살 사춘기’의 작가 영인과 함께 집을 사용하기로 한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야? 동갑내기 여자가 아닌 일곱 살 연하 꽃미남 청년이 들어오다니!

엉겁결에 동거를 시작한 두 사람. 언제나 방글방글 웃는 영인이 밉기도 하고 마음에 들기도 하는데…….

고영인과 함께 살기 시작한 지 108일째, 천재지변이 일어나버렸다!

2. 작가 소개

신민영

사소한 인생을 근사하게 살고 싶다.

촌스러운 낭만을 기억하면서.

블로그 : http://blog.naver.com/ajwannabe

▣ 출간작

불가분의 연애

불꽃(eBook)

유혹의 기술(eBook)

뜻밖에, 우리는(eBook)

고양이가 사는 나라(eBook)

3. 차례

#49. 어떻게 너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

#50. 오기

#51. 내가 있어야 할 곳

#52. 꽃잠 프로젝트

#53. 오! 아름다운 밤과 낮

#54. 행복한 불안

#55. 미필적 고의

#56. 빛과 그림자

#57. 덫

#58. 운수 좋은 날

#59. 우리는 모두 어른이 아니야.

#60. 이해, 오해, 방해

#61. 우리는 오직 서로에게만

#62. 줏대

4. 미리 보기

“나 이제 내려줘도 돼.”

“괜찮겠어? 나 진짜 잠들 때까지 업어줄 수 있는데.”

“충분해. 괜찮아.”

나라가 남자의 등에서 내려오려고 몸을 조금 비틀자 영인이 손바닥으로 툭, 엉덩이를 치더니 천천히 땅에 내려놓는다.

“어휴, 쪼그만 게 되게 무겁네. 이 울보.”

갑작스레 은밀한 터치를 당한 나라가 흠칫 놀라 몸을 바짝 움츠렸다.

땀 젖은 영인에게서 조금 전보다 더욱 짙은 살 냄새가 느껴졌다. 기분을 나른하게 만드는 오묘한 향기였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현관에 들어선 남자는 나라의 손목을 끌어당겼다.

“왜? 왜!”

당황하며 팔을 비틀어 빼는 나라를 이상한 시선으로 보던 영인은 도망칠 궁리를 하는 여자의 불안한 시선을 아랑곳 않고 어깨를 잡았다.

마른침을 꿀꺽 삼키는 나라를 본 영인이 짓궂게 웃는다.

“긴장했어?”

“아아니이. 내가 왜 긴장을 해.”

“긴장해야지. 지금부터 내가 아주 잘하는 걸 할 건데.”

“잘하는 거?”

“응, 내가 말 안 했나? 내가 좀 잘 벗긴다고.”

음흉하게 웃으며 능글능글 이야기하는 영인의 말에 나라가 두 팔을 감싸며 화들짝 놀란다. 섹시한 돌직구에 새색시는 아니지만 새색시처럼 놀라기는 했다.

“뭘 그렇게 놀라? 우리 사귀는 사이 아니야?”

“아니, 그렇긴 한데…….”

“그럼 벗길 수도 있는 거 아니야? 싫어?”

“아니, 싫은 게 아니라…….”

“그럼?”

“그게…… 야! 나는 주체적인 여성이거든? 왜 네가 날 벗기니? 나는 내가 알아서 벗어!”

나라가 짐짓 어깃장을 부리며 턱을 치켜들었다.

그동안 밥을 먹었어도 한참을 더 먹었고, 산전수전 공중전 겪어볼 만큼 겪어온 관록의 세월이 있는데 이렇게 아마추어처럼 희롱(?) 당할 수는 없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음란마귀 빙의하여 꼬꼬마 캔디보이를 덮쳐버릴 수도 있다 이거야!’

조금도 당황하지 않은 척, 늠름하게 어깨를 편 나라를 본 영인이 입술을 당겨 픽 웃더니 그 앞으로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캔디보이를 얼마든지 녹여 먹을 수 있는 센 누나가 되겠다고 다짐했지만, 막상 저돌적으로 다가오는 영인을 보니 나라는 약간 주춤했다.

나라 앞으로 성큼 다가온 남자는 여자의 허리를 세게 휘어잡았다. 영인은 자기 앞으로 바짝 딸려온 나라의 허리와 골반 허벅지를 매끄럽게 훑어 내려간다.

“저기…… 잠깐만.”

“왜? 겁나?”

“아니. 겁나기는. 내가 나이가 몇 살인데…….”

“그래, 나잇값 해. 나는 나잇값 하는 여자가 섹시하더라.”

어쩔 줄 몰라 하는 나라를 신발장에 기대 세운 남자가 천천히 아래로 물 흐르듯 내려가기 시작했다. 영인의 손가락이 닿은 스커트 아래 맨살의 무릎 언저리와 종아리가 불에 덴 것처럼 화끈거렸다.

영인의 손은 점점 더 아래로 흘러가 나라의 가느다란 발목, 오목하게 파인 아킬레스건 부근을 나른하게 어루만졌다.

“저기…… 영인아.”

“긴장하지 마. 안 잡아먹을 테니까.”

“…….”

“오늘은 이거만 벗길게.”

긴장으로 굳었던 몸이 나지막이 속삭이는 영인의 목소리에 조금 이성을 찾았다.

영인은 낡은 샌들의 버클을 풀어 벗겨냈다. 친절하게 여자를 자리에 앉힌 남자는 한구석에 두었던 슈즈박스 뚜껑을 열었다. 티끌 없이 반질반질하게 빛나는 구두가 수줍은 자태를 드러냈다.

“이게 뭐야?”

“신데렐라 구두.”

엉뚱한 농담을 한 영인이 나라의 작은 발에 새 신발을 신겼다. 발목을 감는 스트랩을 정성스레 엮은 영인이 뿌듯한 표정으로 나라를 올려다보았다.

나라는 구두가 신긴 마른 발등을 내려다보다가 문득 마음이 벅차서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이거 나 주는 거야? 내 거야?”

“응. 무조건 누나 거야. 이건 절대적으로 누나만 신어야 하는 신발이거든. 왜냐면!”

영인이 남은 신발 한 짝을 들어 바닥을 보여준다. 신발 바닥에는 붓을 들고 있는 남자 캐릭터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캐릭터 밑에 적힌 ‘고영인’이라는 글자에 나라는 풉 웃음을 터트렸다.

“아무리 도망쳐도 이 신발을 신으면 결국 나한테 오도록 만들어진 구두거든.”

영인은 나라의 발에 신겨진 구두와 들고 있는 신발을 번갈아 손끝으로 톡톡 치며 싱긋 웃었다.

남자는 남은 구두를 마저 신겨주더니 흐뭇하게 웃으며 나라의 발목을 두 손으로 어루만진다. 커다란 영인의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발의 크기 차이가 재미있다.

“남들 클 때, 안 크고 뭐 했어? 완전히 꼬꼬마 같잖아.”

“내가 너무 크면 네가 업어주기 힘들까 봐 조절한 거야.”

“우리 누나가 선견지명이 있네. 역시 똑똑해. 내가 괜히 반한 게 아니야.”

신발을 내려다보며 기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자꾸만 이리저리 발을 움직여보는 나라를 보니 영인은 자기가 선물을 받은 것보다 더 기분이 좋았다.

나라는 영인을 보며 생긋 웃는다.

“아껴서 신어야지.”

“아껴 신지 말고 막 신어. 새 구두쯤 얼마든지 사줄 수 있으니까.”

허세를 부리는 영인을 귀엽다는 듯 보던 나라가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한참 모자란 키였기 때문에 여자는 새 구두를 현관 턱에 디뎌 올랐다. 껑충하게 높아진 나라가 영인의 목에 팔을 걸었다.

“고마워. 영인아.”

“그게 뭐 별거라고. 대단한 것도 아니야. 그냥 몇 푼 안 되는 신발이야.”

“그게 고마워. 별거 아닌 것도 아주, 아주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줘서. 널 만나고 나서 나는 늘 그래. 아주 특별한 사람이 된 기분이야.”

잔잔한 미소와 함께 고백을 마친 나라가 영인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

얌전히 키스를 받던 남자의 입술 새에서 곧 더운 숨이 흘러나왔다. 맞닿은 몸의 체온과 뜨거워지는 입맞춤에 제법 식었다 싶었던 밤기운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한숨 돌리려 입술을 떨어트린 나라는 도드라진 갈비뼈와 브래지어 사이를 안타깝게 어루만지며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방황하는 영인을 바라본다. 풀린 눈으로 그윽하게 바라보고 있는 남자의 나른한 눈빛에, 나라의 마음도 느슨하게 열렸다.

나라가 붉은 입술을 열어 속삭이듯 말한다.

“……나, 갖고 싶어.”

“……응?”

“……꽃잠, 나 그거 가지고 싶어.”

나라의 신호에 풀려 있던 영인의 눈빛에서 반짝 부싯돌 부딪치듯 불꽃이 튀었다.

꽃잠. 일생에서 가장 아름다우며 영원히 기억될 그 잠자리.

확실하고, 아름다고, 황홀한 신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