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생각에는 건혁 씨가 찾으려고 하는 그 여자 분은 안 찾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왜요?”

“때로는 만나지 않는 인연이 더 좋을 때가 있으니까요.”

“혜련 씨가 그 여자라면, 날 만나고 싶지 않을 것 같아요?”

“저라면…… 찾지 않길 바랄 거예요.”

예쁜 외모에 걸맞지 않는 털털함, 각종 운동을 섭렵한,

잘 나가는 커리어우먼이자 동네에서 힘 좀 쓰는 누님 혜련.

그저 남다른 정의감으로 했던 일들이었는데

그런 자신의 모습을 고스란히 목격하고

오랜 시간 마음에 담아왔다는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것도 자신이 일하고 있는 이 회사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남자의 이상형이 되어버린 그녀!

과연 그녀는 끝까지 그에게 자신의 정체를 들키지 않을 수 있을까?

[본문 내용 중에서]

“대답은?”

“아직 못 들었어요. 대신…….”

“대신?”

홀린 것처럼 건혁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람들의 목이 길게 늘어났다.

“키스를 받았는데,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네요.”

“키스?”

“키스!”

여기저기서 짠 것처럼 키스를 외쳤다. 혜련은 머리를 쥐어뜯고 싶었다. 분명 몇 분 전까지만 해도 건혁을 놀려먹는 재미가 있었는데, 이젠 주객이 전도되어 건혁이 자신을 놀리고 있었다.

“그럼 고백을 받아준 거지! 여자가 먼저 키스했다며! 그럼 끝인 거야! 받아들인 거야!”

“그런데 그 여자가 고백에 대한 대답은 다음에 해주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 그럼 차인거야, 뭐야? 그 여자, 뭐가 그렇게 어려워?”

박 과장이 발끈하며 소리쳤다. 그 소리에 혜련은 울컥했으나 티를 낼 수 없어서 앞에 놓인 미지근한 소주만 들이켰다. 미지근한 소주를 먹으니 맛이 더 별로다.

“혜련 씨.”

건혁의 부름에 혜련은 저승사자가 ‘고 투 더 헬’이라며 손을 내민 걸 본 사람처럼 하얗게 질린 얼굴로 그를 보았다. 하마터면 입 밖으로 뱉을 뻔한 소주를 혜련이 힘겹게 삼켰다. 동시에 사무실 사람들의 시선이 혜련에게 쏠렸다.

“예?”

건혁은 습관처럼 턱을 괴고서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평소엔 보기 힘든 불쌍하고도 애처로운 눈빛으로 혜련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연애에 대해선 문외한이라 그런데, 이게 무슨 뜻일까요?”

“글쎄요. 저도 연애 쪽은 문외한이라서.”

“그래도 여자 마음은 여자가 알잖아요. 대체 그 여자는, 무슨 생각으로, 마음 설레게, 키스하고 도망간 걸까요?”

“……글쎄요.”

줄 수 있는 대답이 ‘글쎄요’ 밖에 없었다. 그 후로 혜련은 슬그머니 시선을 돌린 채 술 마시기에 집중했다. 목이 타는데 물병은 건혁의 앞에 있었고, 혜련의 주변엔 술이 넘쳐났다. 아예 맥주잔에 소주를 들이붓고서 마시는 혜련을 보며 건혁이 입술을 꽉 다물었다.

이 정도하면 힌트라도 줄만한데, 끝까지 입 다물고 있는 혜련이 이젠 얄밉기까지 했다.

“뭐, 생각해보니 그 여자의 대답은 상관없겠네요.”

건혁은 턱을 괸 손을 풀며 허리를 꼿꼿하게 세웠다. 다부져 보이는 상체가 길게 펴지면서 그의 자세가 한결 나른해졌다. 비스듬히 기울인 고개에, 나른하게 감았다가 뜨는 눈. 잠시 봉인되어있던 색기 흐르는 눈빛과 자세를 마주한 여직원들의 침 삼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그러나 혜련만은 불안한 눈빛으로 건혁을 보았다.

또 무슨 소리를 하려고?

“키스 받았다고 온 동네에 소문내면 되겠죠, 뭐.”

[프로필]

서혜은(아홉시)

지치지 않는 체력과

별처럼 많은 에피소드를

떠올리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하는 여자.

* 출간작

『너에게 나를 주다』 『계약하다』 『오피스 로맨스』 『절대적 관계』 『오피스 다이어리』

『귀공자의 작업방식』 『너에게로 추락』 『자박자박 너를 따라서』 『두근두근 네가 좋아서』

『이기적인 남자』

[목차]

프롤로그

1.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2. 아무래도 그와는 악연

3. 2층 세입자

4. 밝혀진 비밀

5. 친구 맺기

6. 서른의 일탈

7. 오래된 복수

8. 밝혀진 비밀과 소소한 복수

9. 달달한 연애

10. 깊은 고백

에필로그 1.

에필로그 2. 그 아들의 사정